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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 흑과 백!
 
열다섯 살의 용기

원제 : 클로뎃 콜빈, 정의 없는 세상에 맞서다

필립 후즈 저 | 김민석 번역 | 돌베개

출판일 : 2011.11.21 | 페이지 : 212 쪽
ISBN-10 : 8971994533
ISBN-13 : 9788971994535

국내 주간 인기 OPB 순위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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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후즈 -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작가


인디애나 주 사우스벤드에서 태어나 인디애나 대학을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산림학을 공부했다. 메인 주 포틀랜드에서 에세이, 논픽션, 어린이 책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특히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활약을 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저서로는 딸과 함께 쓴 『안녕, 꼬마 개미』로 1998년 제인 애덤스 어린이 도서상을 수상, 『우리 세상이기도 해요! - 세상을 바꾼 아이들』로 1994년 크리스토퍼 상을 받았다. 또 『우리도 거기 있었어요! - 미국 역사 속 아이들』은 2001년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다.


인간의 존엄


저자는 사람은 누구나 정의를 위해 사회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이란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는 평등한 권리를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피부색이나 종교, 성별 나이 등으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클로뎃 콜빈은 마땅히 누려야 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어린 소녀다. 그녀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모욕하는 사회 제도에 저항하며 정의를 위해 용감하게 행동했다. 또 클로뎃은 열다섯 살 어린 나이로 흑인 민권 운동의 승리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법정에 서는 대담함을 보였다. 저자는 이처럼 인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의를 위해 참여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의를 위한 실천


저자는 흑인 민권 운동 역사에서 가려졌던 클로뎃 콜빈의 이야기를 하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로자 파크스는 인종 차별에 맞선 평범한 시민으로 그녀의 저항은 흑인 민권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저자는 로자 파크스보다 먼저 정의에 맞서 행동했던 소녀가 있다고 말한다. 클로뎃 콜빈은 로자 파크스보다 9개월 앞서 몽고메리의 버스 운동에 저항했던 소녀다. 그러나 흑인 민권 운동을 촉발했던 클로뎃 콜빈의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자는 흑인 민권 운동에서 가려졌던 클로뎃 콜빈의 이야기를 하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저자는 많은 이가 흑인 민권 운동의 승리를 위해 용감하게 행동한 클로뎃 콜빈을 기억하길 바란다.

철저한 인종 분리가 시행되던 미국의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 인종 차별에 맞선 클로뎃 콜빈이라는 용감한 흑인 소녀가 있었다. 클로뎃은 정의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고 흑인들을 대변해 인종 분리법의 부당함을 법정에서 증언했다. 이는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던 위험을 감수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종 분리법 폐지라는 판결로 흑인들은 승리를 거뒀다. 저자는 많은 이가 정의를 위해 용감하게 행동한 열다섯 살 소녀, 클로뎃 콜빈을 기억하길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불평등한 차별에 맞서 정의를 위해 행동하고 참여할 권리가 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미국 남부에서는 심한 인종차별이 있었다. 그 당시 흑인과 백인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병원에서 태어나 죽어서도 다른 묘지에 묻혔다. 흑인들은 사람이 아닌 동물 취급을 받으며 모욕과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클로뎃 콜빈은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므로 흑인들도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흑인 민권 운동의 승리를 위해 당당하게 법정에 섰다. 인권은 ‘사람’이기에 가지는 권리다. 그러므로 나이나 성별 등을 불문하고 ‘사람’은 누구나 정의를 위해 행동하고 참여할 권리가 있다.



1. 흑과 백


흑인과 백인의 차별이 심했던 시절, 이에 불만을 가진 클로뎃 콜빈이라는 소녀가 있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미국 앨라배마 중부에는 ‘짐 크로 법’이 있었다. 이 법의 목적은 백인과 흑인을 분리하고 흑인을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철저하게 분리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흑인과 백인은 다른 병원에서 태어났고 학교도 달랐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죽어서도 서로 다른 묘지에 묻혔다. 공공장소에서조차 서로 다른 화장실, 서로 다른 식수대에서 물을 마셔야 했다. 흑인은 백인과 살이 닿아서도 스쳐서도 안 되고 임금 또한 백인의 절반 수준이었다. 법률, 간판, 칸막이, 화살표, 규정, 모욕, 위협 등 수많은 관습이 인종을 갈라놓았다. 이런 인종 분리 정책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짐 크로 법’이다.

남부의 모든 도시에서는 버스를 타면 흑인은 뒷좌석, 백인은 앞좌석에 앉았다. 그런데 몽고메리에는 독자적인 규칙과 전통이 있었다. 버스에 자리가 없으면 자신의 자리를 백인에게 양보해야 했다. 엄연히 시내버스 법률을 무시하는 행위였지만 흑인 승객은 체포되는 것이 두려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 한 클로뎃은 같은 흑인 친구들이 서로 ‘멍청한 검둥이’라 부르며 자신을 깎아내리는 사실이 슬펐다. 아이들은 자신의 머릿결, 피부색을 미워하며 백인 아이들 흉내를 내려 안간힘을 썼다. 변호사가 꿈인 열다섯 살 클로뎃은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이었다. 그녀는 수업시간을 통해 흑인에게도 역사가 있다는 걸 알고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몽고메리의 흑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평등한 취급이 싫었기 때문이다. 또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 어른들을 보며 무작정 정의를 바라는 데도 지쳐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공부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그날을 위해.


2. 흑인으로서의 권리


흑인으로서 정당한 헌법상 권리를 주장하던 클로뎃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버스에서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던 클로뎃은 결국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클로뎃은 울면서 말했다. “나도 이 자리에 앉을 헌법상의 권리가 있어요. 나도 차비를 냈다고요!” 수업시간을 통해 헌법을 공부한 클로뎃은 흑인인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열다섯 살의 클로뎃은 결국 감방에 갇히게 되었다. 클로뎃의 변론을 맡은 프레드 그레이 변호사는 인종 분리 정책을 뿌리 뽑겠다는 각오를 한 사람이었다. 그레이는 민권 운동의 좋은 사례가 될 클로뎃 사건으로 인종 분리법이 위헌임을 입증하고 싶었다.

클로뎃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몽고메리뿐 아니라 미국 곳곳에 알려졌다. 그리고 흑인 단체인 시민조정위원회는 클로뎃의 무죄 방면을 요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고 클로뎃은 부모의 보호 아래 둔다는 보호 관찰형을 받고 풀려났다. 사방에서 항의가 빗발쳤고 보이콧(무언가를 사거나 이용하는 것을 집단으로 거부하는 운동) 문제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이콧 운동을 유발하기에는 클로뎃은 너무 어렸고 가난하게 자란 그녀의 배경도 문제가 되었다. 심지어 감정적이고 자제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결국 NAAC P(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흑인 인권 단체)와 다른 몽고메리 단체들은 클로뎃의 유죄 판결 사건으로 버스 보이콧은 하지 않기로 했다.


3. 흑인들의 저항 운동


어린 클로뎃의 의견은 존중받지 못했지만 흑인들은 인권 주장에 나섰다.

클로뎃과 같은 이유로 체포된 로자 파크스는 인종 분리법 위반이 아닌 소란 행위로 기소되었다. 시내 백화점에서 재봉사로 일하는 로자 파크스는 몽고메리 NAACP에서의 활약으로 널리 알려졌고 모든 흑인은 그녀를 존경했다. 그녀는 클로뎃처럼 소문도 없었으며 십 대도 아니었다. 40대 중반인 그녀는 침착하고 상냥한, 헌신적이고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흑인 사회는 로자 파크스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클로뎃은 버스 정책에 맞선 어른의 행동에 기뻤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느낌도 들었다. 클로뎃은 법정에서 계속 싸우길 바랐지만, 그녀의 사건으로 인권 운동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흑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활동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로자 파크스 사건을 계기로 몽고메리 흑인들의 인권 운동은 시작됐다. 버스 승차를 거부하는 흑인들은 카풀(자동차 함께 타기)을 하는가 하면 몇 킬로미터씩 걸어 다니기도 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대중 집회에서는 연설했고 모두가 집회에 모여 서로 격려했다. 몽고메리는 흥분으로 뒤덮였다. 보이콧이 두 달째로 접어들자 기자들이 몰려와 흑인들의 버스 저항 운동을 취재했다.

그레이 변호사는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 법원이라면 흑인 변호사들이 신청한 인종 분리 반대 소송에 편견 없이 귀 기울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정에서 할 증언을 위해 클로뎃을 출두시키기로 했다. 그레이 변호사를 만난 클로뎃은 변함없이 인종 분리에 동의할 수 없었고 그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녀는 증언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마음먹었다.


4. 승리의 환호성


흑인들의 버스 저항 운동은 승리했지만 어린 클로뎃은 사람들에게 잊히고 말았다.

‘브라우더 대 게일 소송 사건’은 흑인들이 보이콧을 확실한 승리로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람들은 일찍부터 연방 법원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버스 보이콧이 시작된 지 159일 되는 날이었다. 다섯 명의 원고 가운데 알파벳 순서상 맨 앞이었던 브라우더와 W. A. 게일은 몽고메리 시장을 가리켜 지어진 ‘브라우더 대 게일 소송 사건’은 백인을 상대로 하는 흑인 모두의 소송이었다. 정의를 얻고 싶었던 흑인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인종 분리법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 투옥되었던 클로뎃은 마지막으로 증언했다. 클로뎃은 몽고메리 버스에서 짐 크로 법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측면에서 누구보다 경험이 많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증언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지난 석 달 동안 클로뎃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증언을 준비했다. 그리고 클로뎃은 백인 변호사와 판사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최선을 다해 증언했다. 그녀의 증언에 깊은 감명을 받은 변호사는 “증인 중에 스타가 있다면 그건 바로 클로뎃 콜빈 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침내 법원은 인종 분리 좌석 제도를 폐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권 승리 가운데 하나였다. 보이콧 참가자들은 대중 집회를 열어 기쁨을 나눴다. 21개월 전 클로뎃이 체포되면서 촉발된 버스 저항 운동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기쁨을 나누는 자리에 클로뎃은 없었다. 법정을 나선 후 그녀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 용감했던 한 소녀


흑인 민권 운동의 일익을 담당했던 클로뎃을 지켜준 사람은 결국 가족뿐이었다.

남부의 모든 생활은 위태로워졌다. 버스 인종 분리 정책은 승리로 끝났지만 인종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흑인 교회에 불을 지르고 총기를 난사했다. 곳곳에서 폭력과 협박이 난무했다. 특히 보이콧에 관련되었던 사람들은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더는 인종 분리 정책이 문제가 아닌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아이를 키우며 생활해야 했던 클로뎃도 안전할 수 없었다.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 또한 없었다. 그렇게 어린 클로뎃은 사람들에게 잊힌 채 무서운 날들을 보냈다.

쉰여섯이 된 클로뎃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말했다. “보이콧이 끝난 직후에 작지만 좋은 일이 생기긴 했어요. 대중 집회가 끝난 이후 킹 목사님을 다시 만난 적이 있거든요. 법정에서 용감하게 증언을 해 줘 고맙다고 했어요. 킹 목사님을 만났다고 해서 월급이 나오거나 사람들이 나와 내 아이에 대해 수군거리지 않게 된 건 아니에요. 또 내가 안전해진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날 저녁 목사님한테 칭찬 몇 마디 듣고 기분이 좋았다는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요.”



정의를 위한 목소리


클로뎃 콜빈은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인권을 주장한 용감한 소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흑인과 백인 구역을 나누는 ‘인종 분리법’이 위헌이라는 소송이 연방법원에 제기됐고, 클로뎃은 법정에서 당당히 증언한다. 56년 인종 분리법은 위헌이라는 역사적 판결이 내려진다. 그러나 흑인 운동사에는 백인에게 양보하길 거부한 최초의 성인이었던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만 기록됐다. 클로뎃에게 남은 건 ‘경찰관 폭행’에 대한 유죄 꼬리표와 퇴학. 변호사와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던 소녀의 당찬 꿈은 꺾였다. 20년이 지난 뒤에야 한 신문사 기자가 로자 파크스 이전에 클로뎃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조용히 지내는 게 몸에 밴 클로뎃은 2005년에야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50주년’을 기념해 모교 강당에 선다. (중략... 중앙일보 2011. 11. 26)

인종 분리법 폐지 이후, 40여 년이 지나서야 클로뎃은 다시 몽고메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이 민권 운동의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은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또 그때나 지금이나 정의를 손에 넣는 건 쉽지 않기 때문에 옳지 않은 것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내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이 책은 흑인 민권 운동에서 사람들에게 잊힐 뻔한 용기 있는 어린 소녀 ‘클로뎃 콜빈’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미국 남부지역 앨라배마 주의 짐 크로 법은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을 합법화했다. 그러나 열다섯 살의 클로뎃은 차별받는 부당함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그녀는 결국 경찰에게 붙잡혀 재판을 받고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 후 흑인들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았던 짐 크로 법의 폐지를 위해 클로뎃은 당당히 법정에서 증언했다. 하지만 정의를 위해 당차게 행동했던 그녀는 승리의 기쁨도 함께 나누지 못했다. 그리고 클로뎃은 40년 후 비로소 자신이 생활하던 몽고메리를 찾는다.

도대체 열다섯 어린 나이에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클로뎃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흑인 민권 운동이 일어나기까지, 그리고 승리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법정에서 증언한 이후 외로운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가난하게 자란 평범하고 나이 어린 철부지에 불과했던 클로뎃은 흑인들에게조차 잊히고 말았다.

정의를 위한 권리 주장은 어른들만의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 어린 나이에도 흑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했던 소녀에게 등 돌린 이기적인 어른들. 책을 덮으며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4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녀는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추스르며 살아왔을지, 열다섯 어린 나이에 받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며 살았을지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오랜 망설임 끝에 다시 몽고메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아직도 미국 구석구석에 인종 분리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세요. 뒷걸음질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세요. 쓸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손에 넣으세요. 경쟁할 준비를 하세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당시 열다섯 살 어린 소녀, 당당하고 용감했던 클로뎃의 모습을 본다.


조상들이 물려준 재능을 발휘합니다. 나는 노예의 꿈이자 희망입니다. 나는 일어납니다. 나는 일어납니다. 나는, 일어납니다.
Written By 김진아
- 나에게는 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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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권리 jae7729 0
발견 - 짐 크로 법의 목적은 백인과 흑인을 분류하기 위해서, 빈곤이 계속 되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백인들은 언제나 흑인을 무시했다. 하지만, 백인들에게도 권리가 있듯이 흑인에게도 권리가 있는 데도 백인들은 흑인들에 권리를 빼앗아 갔다. 흑인 민권 운동을 한 이후에 짐 크로 법이 없어졌다.

느낌 - 같은 사람이지만, 인종 차별로 흑인들은 무시를 받아야했다. 하지만, 다시 흑인들의 권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길을 지나가다 흑인이라고 놀리거나,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
진정한 용기 h997769 0
나를 비롯 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과 부조리한 세상과 싸우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세상의 제도와 의식이 바뀌려면 시간이 필요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