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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다
 
한국 고대사 바꿔 써야 할 세 가지 문제

이도상 저 | 역사의아침

출판일 : 2012.08.27 | 페이지 : 252 쪽

ISBN-13 : 9788993119466

국내 주간 인기 OPB 순위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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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상 -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고자 하는 저자


저자는 육군대학, 국방대학원을 수료했고, 단국대 대학원에서 역사교육학(교육학 석사)과 한국사(문학박사)를 전공했다. 전역 후엔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고자 대학에서 한국사를 강의했다. 그 밖의 저서로는 『일제의 역사 침략 120년』, 『한민족의 국위 수준』 등이 있다.


국사 교과서의 역할


저자는 현행 국사 교과서가 과연 우리 민족의 기원과 사상, 문화의 원형을 제대로 밝혀 청소년들의 자아 형성과 한국인으로서 정체성 확립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소년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처음 학습하는 것이 국사 교과서다. 따라서 국가 교과서야말로 우리 청소년들을 국가의 주역이자 한국인으로서 바르게 살아나갈 수 있도록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현행 국사 교과서가 과연 우리 민족의 기원과 사상, 문화의 원형을 제대로 밝혀 청소년들의 자아 형성과 한국인으로서 정체성 확립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고대사의 진실을 통한 올바른 역사관 정립


저자는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 한국 고대사를 역사적 진실에 가깝게 복원하여 보여주고자 한다.

한국 고대사는 매우 중요한 해석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어 우리 민족사에 대한 인식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 한국 고대사를 역사적 진실에 가깝게 복원하여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는 독자가 역사적 진실에 가깝게 복원된 한국 고대사를 이해함으로써,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기 원한다.

현행 국사 교과서는 모호한 설명으로 한국 고대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트리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독자가 역사적 진실에 가깝게 복원된 한국 고대사를 이해함으로써,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기 원한다.



『삼국유사』의 단군왕검사화를 통해 소개된 고대조선은 석기시대를 벗어나 청동기 문화 단계로 발전한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다.

한국 고대사를 역사적 진실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서는 한국 고대사에서 논의되는 주요 쟁점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고대조선의 역사에 대한 인식,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에 대한 해석, 기자국과 위만국, 한사군의 위치와 성격에 대한 해석 세 가지다. 각종 사서의 연구와 고고학의 연구 성과를 통해 고대조선이 서기전 2333년 건국을 기점으로 서기전 1222년까지를 전기, 서기전 425년까지를 후기로 하여 단절 없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후 고대조선은 쇠락하여 열국 시대에 진입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삼국유사』의 단군왕검사화가 석기시대를 벗어나 청동기 문화 단계로 발전하는 고대조선의 역사적 체험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줌을 알 수 있다.



1. 한국 고대사의 주요 쟁점 세 가지


한국 고대사에서 논의되는 주요 쟁점은 고대조선의 역사에 대한 인식,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에 대한 해석, 기자국과 위만국, 한사군의 위치와 성격에 대한 해석 세 가지다.

우리 민족의 사상과 문화의 원형은 국제 경쟁력의 모태가 된다. 따라서 이를 논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기원이 밝혀져야 한다. 그런데 현행 국사 교과서에조차 우리 민족의 기원이 모호하게 기술돼 있고 학자마다 각기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한국 고대사에서 논의되는 주요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변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고대조선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현행 국사 교과서에는 고대조선의 역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으며 역사적 실재성에 대해서도 모호하게 정리하고 있다. 최근의 국사 교과서에는 고대조선이 서기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그 이상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어 그 전과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 없다.

둘째는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에 대한 해석이다.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는 고대국가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대국가의 시작은 청동기시대부터라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사에서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가 서기전 24세기경까지 올라가야 서기전 2333년 고대조선 건국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즉, 우리 민족이 언제 청동기시대에 진입했느냐 하는 것은 고대조선의 역사가 실재한 역사냐, 아니면 가공의 역사냐를 판가름하는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셋째는 기자국과 위만국, 한사군의 위치와 성격에 대한 해석이다. 한국사에서 기자의 후손과 위만의 관계, 위만국과 한사군의 관계는 연속선상에서 파악해야 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 위치가 어디였느냐에 따라 한국 역사의 출발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따라서 그 진위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함에도 학자들의 해석이 제각각이어서 한국 고대사 인식상에 심각한 혼란을 빚고 있다. 즉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이 지금의 중국 난하, 대능하, 요하 유역 일대에서 전개되었다는 견해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 유역에서 전개되었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 있다. 이 세 가지 쟁점이 해결된다면 한국 고대사 체계상의 갈등은 거의 해소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 다시 정리하는 고대조선의 역사


고대조선은 서기전 2333년 건국을 기점으로 서기전 1222년까지를 전기, 서기전 425년까지를 후기로 하여 단절 없이 지속되었으며, 그 이후 열국 시대에 진입했다.

우리 역사의 기원은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대조선에서 비롯한 것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것은 『위서』와 『고기』에 근거하여 작성된 『삼국유사』가 그에 대한 기록을 전하고 있고, 고고학적으로도 상당량의 유적과 유물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조선의 역사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대조선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서기전 2333년에 건국되어 기자가 동래하였다는 서기전 1122년까지를 전기로 봐야 한다. 이 시기는 아직 한자가 널리 쓰이기 이전이며, 읍제 국가 형태의 초기 국가들이 여기저기 분립되어 있던 시기다. 고대조선 전기의 단군은 제천 행사를 주관한다는 차원에서 상징성이 강한 군장으로, 자신의 직할 지역을 제외한 영역은 자치적인 성격이 강한 제후국들과의 연맹 관계를 유지했다. 이때부터 점차 우리 민족이 형성돼 나가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고대조선 후기는 시기적으로 하가점 상층 문화와 같은 편년이다. 고대조선은 후기에 접어들면서 매우 광활한 지역에서 문화권을 형성한 영역 국가 체제로 발전했다. 같은 시기 고인돌과 청동 기물 등 고대조선의 상징적 유적과 유물들이 요서, 요동 지역뿐 아니라 남북한 전역에 폭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서기전 2333년 건국된 고대조선은 서기전 425년까지 존속했다. 서기전 425년 열국 시대에 들어간 이후의 고대조선은 극히 쇠락한 군소 국가의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함께 존재했던 여러 나라가 부여, 비류, 신라, 고구려, 남북옥적, 예, 맥 등이었고 이어서 백제와 가야가 열국에 동참한다.

따라서 한국 고대사는 서기전 2333년 고대조선의 건국을 기점으로 서기전 1222년까지를 전기, 서기전 425년까지를 후기로 하여 단절 없이 지속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후 고대조선이 하나의 군소 국가로 쇠락하고 제천 행사를 주관하는 정통성은 부여로 승계되면서 열국 시대에 들어간 것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 기간 중 고대조선의 옛 영역 안에는 기자국-위만국-한사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이 있었으나 이는 고대조선의 흥망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3. 『삼국유사』의 단군왕검사화의 재고찰


『삼국유사』의 단군왕검사화는 석기시대를 벗어나 청동기 문화 단계로 발전하는 고대조선의 역사적 체험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준다.

만주 지역의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는 최근의 발굴 성과에 의하면 서기전 2400년경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와 전남 영암군 장천리 등에서 서기전 2400년경의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를 서기전 2400년경으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와 주장들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왕검의 고대조선 개국 연대와 우리 민족의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가 거의 일치하게 된다.

그리고 대체로 청동기시대에 국가사회 단계로 진입하였다는 일반론적인 측면에서 고대조선의 개국 연대를 서기전 2333년으로 기록한 『삼국유사』의 단군왕검사화는 민족의 역사적 체험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준다고 볼 수 있다. 즉, 고대조선은 석기시대를 벗어나 청동기 문화 단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고대조선은 초기 국가사회로 진입하여 역사시대를 열어 나감으로써 서기전 24세기경 우리 민족의 기원을 열었으며 이로부터 민족의 사상과 문화의 원형이 형성돼 나왔다.



고대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다


정부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일제에 약탈당한 문화재 환수를 추진해야 한다.

국립전주박물관(유병하 관장)이 지난 15일 고조선을 실존의 역사로 인정해 고대전시실을 전격 개편했다. 이에 대해 국립전주박물관 최경환 학예사는 “전주박물관에 고조선실 개설을 요청하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박물관에는 고조선실을 별도로 설치할 공간이나 유물이 없다. 따라서 고조선에 대한 정보를 설명하는 패널만을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미 지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은 한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정치체로 인정해 별도로 고조선실을 개관하여 국민에게 선보여 왔다. (중략... 아시아뉴스통신 2013. 04. 24)

그동안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상고사에 관한 연구가 미진했으며 고조선이 최초의 국가인지 실증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반도, 만주에서 고조선 유물이 잇달아 발견되고 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척되면서, 더 이상 고조선을 신화 속 전설의 나라로 방치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 고대사 바꿔 써야 할 세 가지 문제』는 고대조선을 둘러싼 해석상의 오류를 논리적으로 파헤쳐 국사 교과서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를 설명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문헌 사료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비교하면서 이를 고고학적 연구 성과들을 연결시켜 재해석을 시도한다. 따라서 『한국 고대사 바꿔 써야 할 세 가지 문제』는 한국 고대사 논란을 매우 간결하고 쉽게 정리하여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국내에서 단군조선은 아직 신화에 머물러 있다. 이는 일제의 식민사학 때문이다. 1910년 한·일 합방이후 일제는 전국에서 민족고유사서 20만 권을 모아 불사르고 조선사 편수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마니시류와 그의 제자인 이병도 박사 등이 한국사를 일본역사 2,600여년 보다 짧은 2천 년 이하로 하기 위하여 단군조선사 2천여 년을 빼버리고 본격적으로 단군신화론을 왜곡하여 널리 전파하였다. 그리고 이병도 박사 등은 해방 후에도 식민사학에 대한 반성 없이 강단사학을 사실상 장악하여 일제식민사학이 유지되고 전파시켰다. 따라서 정부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일제에 약탈당한 문화재 환수를 추진해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주로 서적 등과 같은 문화재의 기록에 의해 전해지기 때문이다.


역사를 모르면 근본을 알 수 없고, 근본을 모르면 기본이 흐트러진다. - 이도상 -
Written By 김선형
- 회의는 비판적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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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조선을 논쟁 종결 차주환 0
▹ 저자이해 : 한국사 강의 교수
▹ 저술내용(주제) : 한국 고대사의 진실과 역사 인식
▹ 내용구성
1) 한국 고대사의 쟁점
고대조선을 역사로 인식?, 청동기시대 진입연대, 기자국, 위만국, 한사군의 위치와 성격
2) 쟁점 종결
역사의 기원은 고대조선이다, 서기전 2400년 경이라 주장(국가로 발전하는 일반론에 맞음), 기자국, 위만국, 한사군은 고대조선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