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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배려는 곧 타자 배려이다.
 
성의 역사 3

푸코 저 | 이혜숙 번역 | 나남

출판일 : 2004.5.1 | 페이지 : 270 쪽
ISBN-10 : 978893003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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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프랑스의 사회학자


프랑스 쁘와띠에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 심리학, 정신병리학 등을 공부했으며, 니체, 하이데거, 바따이유, 바슐라르, 깡길렘, 알튀세르 등의 영향을 받았다. 『광기(狂氣)와 비이성(非理性)―고전시대에서의 광기의 역사』(1961)와 『임상의학의 탄생』(1963) 등을 저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각 시대의 앎[知]의 기저에는 무의식적 문화의 체계가 있다는 사상에 도달하였다.


자기 배려의 탄생 배경


저자는 헬레니즘 시기에 자기 배려의 원칙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헬레니즘 시기에 와서 절정을 이룬 하나의 현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를 강화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자기연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발단이다. 곧 자기배려의 원칙이다. 자기배려는 개인상호간의 관계, 하나의 사회적 실천을 형성, 어떤 인식의 유형과 지식의 형성을 야기했다.


자기배려의 윤리성


저자는 자기 배려가 윤리적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는 성이 이제 더 이상 권력과 연관지어 논의될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존재의 기술’, ’자아의 테크닉’으로 사용되는 개인적 윤리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자신과 자신의 신체에 대한 배려는 성적 활동의 가장 중요한 축을 구성하며 성행위에 있어 가치란 곧 ’자제’된 행동으로 귀착된다.


저자는 자기배려가 나아가 윤리적인 타자배려로 나아가는 사회를 추구한다.

저자는 자기를 배려하는 주체가 자기를 절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주체라고 본다. 이 주체는 자기를 배려하면서 그 마음으로 똑같이 타자를 배려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공동체는 윤리적 공동체로서 각 개인의 존엄을 지키고 아름다운 사회로 그려진다. 저자는 우리 현대 사회도 이러한 사회를 지향하고 추구하길 바란다.



자신의 성적 쾌락조차 통제하고 다스릴 줄 아는 자만이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통치할 때의 합리성은 자기 자신을 다스릴 때의 합리성과 동일한 것이 요구된다.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권력의 행사는 불안정한 상황의 지배를 받는다. 즉, 스스로 미리 한계를 정함으로써 대비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신체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불안이 증가하고, 이러한 틀 속에서 의학은 성적 쾌락의 문제를 제기했다.



1. 자기 절제 하는 주체


자기를 배려하는 주체는 자기를 절제하고 통제할 줄 아는 주체이다.

그리스에서 절제된 인간이 행하는 자기통제는 하인들에 대한 주인의 태도에서 그 모델을 취한다. 절제된 인간의 고행, 즉 이 싸움은 타자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전투의 필요성과 어려움은 그것이 자기와의 투쟁으로서 전개되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와의 고행적 관계는 욕망을 제거하거나 쾌락의 강도를 감소시키는 데 있지 않고 그들을 통제하는데 있다. 결국 쾌락을 활용함에 있어서 스스로를 덕성스럽고 절제력 있는 주체로 세우기 위해 개인은 지배-복종, 명령-굴복, 억제-순종과 같은 식으로 자기와의 관계를 정립해야만 한다. 욕망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는 하인과 주인이 맺는 관계와 같다. 게다가 덕성스럽기를 원하는 개인은 도시국가 구조 내에서 그 모델을 발견해야 한다. 위계질서와 더불어 도시국가는 자기 자신을 통치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자기 자신과의 적대적 관계는 시련에 견디기 위해 훈련과 준비를 요한다. 푸코에 의하면 자기 통치를 위해 필요한 훈련은 타인을 지배하는데 필요한 훈련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훈련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신을 구성하는 보편적 과제에 통합된다. 그러나 이후 기독교의 금욕주의는 이와 다르다. 기독교적 자기점검과 고백이 푸코의 관심을 끈다. 이제 도덕적 생활의 진실을 아는 것이 관건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욕망하는 주체인 자기를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자기분석의 엄격한 기술은 4, 5세기 경 수도원에서 발전된다. 신학교와 수도원을 위해 일상생활, 자기 점검, 영성지도, 지도자와 피지도자 간의 관계에 대한 담론화의 세심한 기술들이 고안되었다. 이 기술들은 그리스적 자기 통제를 완결하는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수도사들의 욕망원천 즉 생각 욕망, 관능적 상상력, 열락, 영혼과 육체의 순차적인 움직임 등을 분석하는데 사용되었다.


2. 그리스인의 자기배려


그리스인들은 스스로 자유롭고자 자기를 절제하고 통제했다.

그리스인들은 기독교인들처럼 결백성과 순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고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성욕과 싸웠다. 이 같은 자유는 자기통제의 완성을 내포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자유와 결정론의 이분법은 그리스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행사하는 권력은 동일한 권력이다. “사실상 법령에 의해 타인들의 권한 하에 있는 자는 그 자신에게서 자기 절제의 원칙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 그는 사람들이 그에게 내리는 명령과 규칙에 복종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것이 플라톤이 직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바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을 인도해야 하는 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완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다. 그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가 행사하는 권력으로 인해 그가 자신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키고 따라서 그것에 빠져들기 쉬울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행동의 문란함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도시국가의 전체적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기에 대한 지배의 일면으로서 이해된 절제는 정의, 용기, 신중함에 못지 않게 타인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해야 하는 자를 특징짓는 덕목이다. 가장 왕다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왕인 자이다.

자기통제로부터 나오는 절제는 타인에게 권위를 행사하려는 자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 푸코는 이 자기통제를 능동적 자유라고 명명하고 이것을 수동성과 대립시킨다. 자기지배는 자기 자신에 대해 남자가 되는, 다시 말해 억제되어야 하는 것은 억제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굴복시켜 이성의 원칙들이 없는 것에 그 원칙들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자기 통제는 윤리적, 성적, 사회적 남성다움을 형성하며 개인적인 성의 영역으로부터 시작해 가정을 거쳐 사회, 정치적 공간으로 확산된다. 그리스인들은 남성성을 완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능동적 자기통제를 남성성에 연관시킨다. 무절제는 여성성을 의미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수동성을 의미한다.


3. 존재의 미학


존재는 자기를 배려할 때 가장 아름답다.

능동적 자유인 자기통제는 진실과의 관계를 내포한다. 자신의 쾌락을 지배하고 그것을 로고스에 복종시키는 것은 똑같은 한 가지 사항이 될 뿐이다. 달리 말해서 절제의 완수는 일종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윤리적 주체로 자신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이 지식의 주체로 자신을 형성하는 것은 독특한 과제다.

먼저 주체는 욕망을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행동을 규칙화 할 수 있어야 한다. 실천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대로 무엇을 해야 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며, 언제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동원되어야 한다. 민감한 영혼은 욕망의 역학이 즉각적으로 아름다운 대상에 부응하기보다는 절대적 미 자체의 기억에 부응한다. 이 미는 존재(실존)의 미학이라고 할만한 것인데 이것은 하나의 생활태도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되며, 이 생활태도의 도덕적 가치는 어떤 행동규범과의 합치나 정화작용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의 활용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체는 자신의 쾌락을 활용하여 자기를 배려할 수 있고 이러한 주체들의 사회는 자유롭고 윤리적인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푸코는 이러한 사회를 지향했으며 그 사회의 근원에는 주체의 자기 배려가 있었다. 주체의 자기 지배, 자기 배려는 나아가 공동체의 운영 원리가 되며 자신을 윤리적 주체로 세우면서 타자와의 관계도 윤리적으로 미적으로 구축하는 주요 동력이다.



자기배려와 타자배려


자기배려는 나아가 타자까지 배려하는 원동력이 된다.

푸코는 자기에의 배려는 "영구적인 의학적 배려가 되었다. 한순간의 그침도 없는 의학적 배려는 자기에의 배려의 핵심 사항의 하나였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진찰하는 의사가 되어야 했다."(57~58쪽)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자기 배려 모델이 "언제 정치 활동에서 손을 떼고 자기에의 관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나은 일인가?"라는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프레시안 2013. 3. 29)

자기 배려와 타자 배려의 최근접점에 배우자가 자리 잡는다. 본질적으로 부부관계가 각자의 자기 배려에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기원 후 1,2세기의 부부간의 완전한 융합 - 단일체를 이루는 부부관계에서보다는 각자 독립된 존재로서 맺어지고 완결되는 부부관계 속에서 더 원할한 자기 배려와 서로간의 도움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로서의 부부관계는 의존과 종속의 위험에 노출되며 그로 인해 어느 한쪽은 진정한 자기 배려가 불가능할 것이다. 독립적인 존재로서 맺어진 부부관계 속에서 서로 간에 자기 배려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자기 배려의 스승이면서 제자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결혼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결혼 생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승과 제자, 부모 자식 사이, 상사와 직원, 동료들 간에 자기 배려는 각 개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자기배려는 곧 타자 배려이다 -푸코
Written By 엄진희
- 나 자신을 돌보고 배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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