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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새롭게 분할하라
 
감성의 분할

랑시에르 저 | 오윤성 번역 | b

출판일 : 2008. 2. 15 | 페이지 : 159 쪽
ISBN-10 : 978899170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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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 -프랑스의 철학자


1940년 알제리 출생, 프랑스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 를 졸업했다. 파리 8대학에서 1969~2000년까지 철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파리 8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의 수제자로서 1965년 『자본론 독해, Lire le Capital』 작업에 참여해서 명성을 얻었으나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을 기점으로 루이 알튀세와 결별했다.


감성의 분할


저자는 지배적 체제가 만들어낸 감성의 구조를 변혁하는 것이 곧 정치적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자신의 주요 개념들인 미학, 정치, 감성의 분할, 미학적 예술 체제, 평등 개념 등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동시에 독창적인 사유를 전개한다. 과거의 예술 이론이 현실의 모방이나 재현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면 저자는 이런 이론에 반대하여 예술은 새로운 감각의 질서를 창안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정치의 수단이나 도구가 될 수 없고 그 자체로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학과 정치


저자는 미학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스승 알튀세르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고 독자적 노선을 전개하기까지 정치철학에 몰두했다. 21세기를 전후로 “미학 (혹은 예술)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정치는 미학적 실천들에 의해 추동된다”는 흥미로운 입장을 펼쳐 왔다. 이 작업의 핵심에 ‘감성의 분할’이라는 개념이 놓여있다.


저자는 기존의 감성적 배치에서 다른 새로운 감성의 질서를 창안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길 바란다.

그는 예술을 통해 증폭되는 메타 정치적 가능성을 재차 부각시키며 ‘감성적 혁명 없이는 정치적 혁명도 없음’을 공론화한다. ‘감성의 분할’에 따라 공동체의 질서와 구성원들의 존재 방식을 설정하는 것인 동시에 그 분할을 전복하여 ‘감성의 재분할’을 일으키는 것이 정치이고, 예술은 그러한 ‘감성의 (재)분할’ 속에서 그 고유한 감각 양식의 ‘가시적 행동 양상’이 구조화되는 것이다. 예술과 철학이라는 상이한 두 영역은 ‘감성의 분할’을 매개로 필연적으로 만난다. 예술은 자율적이나 ‘감성의 분할’에 관계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정치는 우리들의 감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분할하는 데 이에 맞서 새로운 감성의 질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정치는 우리의 감각을 특정한 방식으로 분배하고 배치한다. 그런데 만일 정치가 부패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새롭게 질서 짓고 새롭게 배치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을 담당할 수 있는 게 예술의 분야인데, 미학은 그래서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1. 정치와 감각적인 것의 나눔


지배적인 정치 체제는 그들의 방식으로 우리의 감성을 분할한다.

랑시에르는 정치를 “공통의 무대에 대한 갈등”으로 규정하는데 그 이유는 귀족과 평민이 생각하는 정치의 무대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생각하기에, 정치는 로고스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다른 이들과 평등하게 국가의 업무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수행하는 일인 데 반해, 평민들은 로고스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이러한 일에 대한 자격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평민들은 귀족들의 주장과 달리 “귀족의 말들을 모방하는 일련의 언어 행위를 실행했다. 그들은 저주와 찬양의 말을 했고 자신들의 신탁을 얻기 위해 대표를 파견했으며, 다시 이름을 붙임으로써 자신들의 대표자들을 선출했다. 요컨대 그들은 마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인 양 처신했다. 그들은 일종의 위반의 방식에 따라 자신들이 말하는 존재자들이라는 것, 곧 단순히 욕구와 고통, 두려움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능을 명시하는 말을 지닌 말하는 존재자들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따라서 귀족들은 평민들이 말하는 존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로고스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평민들은 이러한 귀족들의 전제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자신들이 말하는 존재자들임을 입증한 셈이다.


2. 정치적 주체화의 쟁점


미세한 우리의 감수성의 영역을 탐구하고 감수성을 변화 시키는 것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랑시에르는 사람들이 보통 정치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집단들의 결집과 동의, 권력의 조직, 장소들 및 기능들의 분배, 이러한 분배에 대한 정당화 체계가 이루어지는 과정들 전체”(p. 51)를 ‘치안’이라고 규정하면서, 그것의 본질을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서 찾는다. 곧 “치안은 무엇보다 행위 양식들과 존재 양식들 및 말하기 양식들 사이의 나눔을 정의하는 신체들의 질서이며, 이 질서는 신체들이 그것들의 이름에 따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과제를 부여받도록 만든다.”(p. 52) 따라서 랑시에르에게 정치는 치안을 규정하는 감각적인 것의 짜임과 단절하는 것이며, “부분들과 몫들, 몫들의 부재가 정의되는 공간을 다시 짜는 일련의 행위들”(p. 53)을 지칭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행위란 국가 권력을 장악하거나 소유 관계를 철폐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보일 만한 장소를 갖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들고, 오직 소음만 일어났던 곳에서 담론이 들리게 하고, 소음으로만 들렸던 것을 담론으로 알아듣게 만드는 것”이 된다. 이 때문에 랑시에르는 마르크스주의나 집합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좌파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꽤나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활동들을 중요한 정치적 행위로 간주한다. 가령 랑시에르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한 혁명들, 곧 프랑스 대혁명이나 1830년 7월 혁명, 또는 1848년 2월 혁명, 아니면 1917년 소비에트 혁명 등과 같은 것을 자신이 말하는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의 저작에서 이런 혁명들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1833년 파리의 재단사들이 양복점 주인들을 상대로 해서 벌인 파업이나 1986년 11월 학생들이 프랑스 정부의 대학 개혁 법안에 반대해서 일으킨 학생 파업을 “가장 의미가 있는 것들 중 하나”(자크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도서출판 길, 2013(전면개정판), 103쪽)로 간주한다.


3. 미학과 감각적인 것의 나눔


미학은 정치적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감수성을 만들어내는 정치적인 것이다.

예술은 과거의 예술 규정, 즉 더 이상 모방(mimesis) 내지 재현의 기준에 종속되지 않으며,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 이 체제의 예술을 규정하는 주요한 기준이 된다. 곧 어떤 작품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작품이 일상적으로 존재하고 실행되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 양식과 일정하게 단절하면서 새로운 감각적인 것의 나눔 양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은 정치와 무관한 것(예술을 위한 예술)도 아니고 정치에 종속적인 것(정치에 봉사하는 예술)도 아니며,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실천을 함축하는 활동이다. 왜냐하면 감각적인 것의 나눔의 일상적인 양식은 데모스를 규율하거나 통치하기 위한 폴리스의 전략의 핵심적인 토대이며,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서 모종의 단절을 이룩하지 않고서는 폴리스 또는 치안의 지배 질서와 단절하는 것, 새로운 주체화 양식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랑시에르에 따르면 예술은 본래적으로 정치적이지만 그것은 예술이 자신의 타자인 정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술 자신의 내재적인 활동으로서 그런 것이다.

이러한 구별은 랑시에르가 예술로서의 예술의 성립 조건을 미메시스(모방)라는 규범으로부터의 탈피에서 찾는다는 것을 뜻한다. 랑시에르의 감성학으로서의 미학 이론은, 미학 내지 예술 활동을 다른 활동과 분리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예술 활동의 인간학적 기초로서 감각적인 것의 나눔은 다른 사회적 활동의 인간학적 기초를 이룰 뿐만 아니라 치안의 토대를 이룬다는 점에서, 예술은 다른 사회적 활동 및 정치와 내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예술로서의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예술의 절대적 자율성을 주장하는 관점을 비판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과 정치 사이에 외재적 관계 내지 도구적 관계를 설정하는 이른바 참여예술론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것이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독특한 감각적 활동으로서의 예술이 자율성을 얻기 위한 조건은 그 인간학적 토대로서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치안의 토대를 이루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과 단절하고 새로운 나눔의 짜임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새로운 미학의 정치를 향하여


미학은 단순히 현실의 재현이나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 행위이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미학적인 것의 자율성은 제한적인 범주 안에서만 유효하다. 현실 안에서 미학적인 것-감성적인 것의 새로운 분배를 실현하는 한에서 그것은 정치지형에 관여하는 힘으로 전환한다. 미학적인 것은 현실에 대한 계몽적 자각이 아니라 “의미작용에 저항하는 것에 의해 야기된 감성적 또는 지각적 충격”에 의해서만 정치성을 발휘할 수 있다. (경향신문 2011. 4. 10.)

랑시에르는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사상가의 이름이지만 프랑스에서 들뢰즈 이후의 새로운 사유로 주목 받고 있는 철학자다. 자크 랑시에르는 이 책에서 자신의 주요 개념들인 미학, 정치, 감성의 분할, 미학적 예술 체제, 평등 개념 등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동시에 구체적이고 다양한 예들을 제시하면서 특유의 독창적인 사유를 전개한다.

그는 플라톤의 ‘예술 체제’인 윤리적 이미지 체제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적(또는 재현적) 예술 체제와 구별되는 미학적 예술 체제를 수단으로, 모호하고 결점이 많은 개념인 ‘모더니티’ 개념을 타파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이어서 같은 논리로, 포스트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개념을 설명한다.

미학은 단순히 현실의 재현이나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의 장이다. 예술은 정치의 수단도 도구도 아니고 새로운 정치를 창안해내는 것이다.


미학적 혁명이 정치 혁명을 가져온다 - 랑시에르
Written By 엄진희
- 감성을 정치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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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의 정치 booklove 0
요약 : 지배권력이 자기의 방식대로 감성을 분할하고 배치하는 것에 반하여 새롭게 감수성을 탐구하고 ㅕ변화시켜 세상을 바꿀수 있고 미학이정치의 도구가 아니고 자체가 정치활동이다.

발견 : 과거 예술이모방과 재현이이었다. 는 점을 앎

느낌 : 정치예술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자체가 정치활동이란말에 공감하며
잘활용해서 사회를 변화시키길 기대하며 기쁘다.
인간적인 조건으로서의 감각적인 것을 새로이 나누는 ... 김미혜 0
우리는 정치라면 주로 지배권력이 나름의 논리체계를 가지고 진행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랑시에르에게 그것은 폴리스, 치안에 불과하다. 그는 정치는 로고스를 가지고 있지 않은 민중이 지배권력의 사고방식을 부인하면서 구현된다. 정치는 예술이 인간적 조건으로서의 감각적인 것을 새로이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감성을 나누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